하늘씨앗교회

완전하여라-2(마 5:43-48) / 산상수훈 21

by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https://youtu.be/ZFZbmV0gEk4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마 5:43–48)


우리는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 사례 중 마지막 사례를 두 번째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섯 가지 사례를 마무리 짓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씀 다음부터는 자선에 관하여, 기도에 관하여, 재물을 축적하는 것에 대하여, …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주제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섯 가지 사례 중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주일째 이 말씀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엄중한 말씀입니다. 우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으며 누가 이 말씀에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자녀가 되기를 갈망하는 자만이 이 말씀을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 뜻대로 변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자만이 이 말씀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먼저,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하십니다. 하나님 자녀 된 우리들은 이 말씀을 우리 삶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말씀에 우리를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에 우리 삶의 모든 조각을 정렬하고 이 말씀에 우리 삶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던 예수님이 여기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며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 손에 맡겨진 일이 아닙니까?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말씀 모두, 동일하신 하나님 아들의 입에서 나온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두 말씀은 모두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가!”라는 주제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에 따르면 이 일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신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 일에는 “우리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둘 다를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은 “우리 구원이 100% 하나님의 역사와 100% 우리의 순종으로 이루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의 순종은 모순이 아닙니다. 사실상, 이 둘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둘 다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은혜입니다. 이 진리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100%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100% 우리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한쪽만을 말하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이단입니다. 그런 법은 없습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왜곡하거나 회피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는 일보다 더 복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자녀가 된다면 내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도 좋습니다. 밭에 감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팔아 밭을 사려고 합니다. (마 13:44)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머뭇거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본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전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내 결단이 영원한 투자이며, 확실한 투자이며, 든든한 투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매우 진지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롬 12: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롬 12:14)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에게 명령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4:12)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고생스러운 사역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고전 4:12–13)


사도 베드로는 핍박과 고난을 받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벧전 3:9) 원수를 사랑하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소개하게 되는 “디다케”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들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을 저주하는 이들을 축복하고 여러분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며 여러분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단식하시오.” (디다케 1:3)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것을 생명의 길로 알고 이 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 길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요, 이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


왜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마 5:45)


이 말씀에서, …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은 세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본문의 맥락에서 “악인”은 하나님의 “원수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적대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녀에게 베푸시는 동일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나 하나님을 아는 자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나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나 똑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 농부의 노력만 축복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의 노력도 똑같이 갚아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사는 마을과 그 옆의 선교지에 똑같은 가을 볕을 베풀어주셔서 과실에 단 맛을 더하고 계십니다. 심판의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마지막 심판때까지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가운데서 선택하신 자나 버림받은 자나 똑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갑니다. 이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 4:8, 16) 우리가 저들과 다른 점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과 달리 살아야 합니다. 달리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호 6:3) 호세아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써서 알아가야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 이것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 자녀 교육이든지, 사업이든지, 직업이든지,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그러해야 합니다. 특별히 세상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아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라고 명령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녀인 우리가 원수들을 좋아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대로 오른뺨을 치면 왼쪽 뺨마저 돌려 대면 됩니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면 됩니다.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면 됩니다. 이것은 소극적인 사랑입니다. 소극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해 주는 것입니다. 복수하지 않고, 악에게 맞서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소극적인 측면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보다 더 나가길 원하십니다. 소극적인 사랑을 넘어서서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박해하는 사람을 저주하지 말고, … (저주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사랑입니다.) 축복해야 합니다. (롬 12:14) (축복하는 것은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사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우리에게는 확실하게 대답할 말이 있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수에게도 사랑을 베푸시기에 나도 그렇게 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너를 불쌍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너를 심판하실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너는 모른다. 너와 나, 우리는 모두 주님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은혜의 때며 복수는 하나님의 것이다. 네가 나에게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너에게 되갚으실 것이다. 그러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것이 하나님과 하나님 자녀를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입니다.


이것이 원수들에 대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태도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원수에게 보복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기꺼이 해주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축복하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처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도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위에서 난 자들이기에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요 17:14) 정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분리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당신도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요 20:21) 하지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래에서 났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위에서 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속해 있지만 하나님 자녀들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요 8:23)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러한 관점으로 만사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재창조하신 새로운 인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사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보며 만사에 대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반응합니다. 위에서 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처럼 우리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누구나 자기 뜻대로 행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롬 14:8)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 우리의 감정, 우리의 의지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세상과 세상 사람을 보는 방식대로 세상과 세상 사람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세상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향만 받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한 주간의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세상과 세상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 어떤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의 기쁨과 슬픔, 행복감과 우울함이 세상 사람들과 세상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향은 얼마나 받았습니까? 


여러분이 세상과 세상 사람과 여러분 자신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 여러분의 영은 혼탁해지고 빛을 잃고 혼란스럽게 됩니다. 여러분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 그리고 자기 안의 감각들을 차단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의 방식이며 심리학적인 방식입니다. 이 시간 냉정하게 여러분 자신을 오늘 말씀의 빛 앞에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쩌면 너무 많이 하나님 외 다른 것들의 영향을 받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영향을 받을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 아들의 사랑뿐입니다. (갈 2:20) 나의 감정, 나의 이성, 나의 의지, 나의 행동과 말에 영향을 주어 나를 바꿀 것은 세상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아버지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만을 붙잡으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롬 8:35)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넉넉히 이기고도 남습니다. (롬 8:37) 정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 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운명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롬 8:38)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불의한 행실과 온갖 부끄러운 짓들을 보고 계십니다. 애통해 하시며 돌아오라 돌아오라 외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보내주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되 주님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심판을 날까지 악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시고, 육신의 사랑의 기쁨을 알게 하시고, 호흡할 공기와 먹거리를 허락하시고, 영원을 바라보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 곧 동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감각을 악한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우리도 원수를 불쌍히 여길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진심으로 원수들을 위해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


어떤 사람들은 원수들을 사랑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독한 감상주의자의 말입니다. 우리는 이땅의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사랑을 베푼다고 해도 원수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행동만이 악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앞서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아니면 세상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곧, 우리의 변화될 삶이 아니면 우리는 절대로 복음으로 세상에 충격을 줄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와 지금 우리가 그토록 세상의 영향력이 없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초대교회는 세상에 충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왜 쓰레기장에 버려진 여자 아이들을 데려와서 정성껏 키울까? 자기들도 힘들텐데” “저 사람들은 왜 전염병을 피해 도망가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마을에 남아 소망도 없이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볼까?” “저들은 왜 그들을 박해한 아무개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성대하게 치루어 줄까?” 도대체 왜!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 이것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세상 사람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는 뚜렷한 간증이 있었습니다. 이런 간증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제가 되었습니다. 내가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갚을 수 없는 사랑을 제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해 주신 대로 당신에게도 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간증입니다. 말로 한 간증이 아닙니다. 행동의 간증입니다.


자녀의 행동 지침


오늘 말씀에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특히 세상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행동 지침에 관한 권면이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을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십시오. 이것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권면입니다. 


특히 자신이 까다롭고 예민한 영혼을 지니신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지체들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말로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기때문에 잘 압니다. 그래서 오랫 동안 제 안에 쌓아온 저도 인식하지 못하는 분노가 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많은 부분이 치유가 되었고 여러분께 말씀으로 권면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저주하는 사람이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신랄한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날카로운 말로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불친절한 말로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지체들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본능적으로 우리는 되갚아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마음에 분노를 쌓아 우울감을 증가시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불친절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친절한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불친절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보복하지도 않고, 오히려 친절한 말로 응답할 수가 있다면, …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는 주님의 계명을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둘째,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선행을 베푸십시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 사랑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미워하는 농부의 밭에도 해를 비춰주시고 비를 내려서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십니다. 우리도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원수 사랑은 구약 성경에는 없고 예수님이 처음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구약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설파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거든, 반드시 그것을 임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너희가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가 짐에 눌려서 쓰러진 것을 보거든,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반드시 임자가 나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와 주어야 한다.” (출 23:4–5) 이것이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잠언에 보면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잠 25:21)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받아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롬 12:20-21)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승리입니다. 우리 본성에 대한 승리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승리이며, 우리의 과거에 대한 승리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증거입니다. 드디어, 악한 자에 속해 있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성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신 우리 주님의 승리입니다. 나의 승리이자 주님의 승리입니다. 100% 나의 순종이요, 100% 주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주님의 승리의 외침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은 선으로 악을 이긴 하나님 아들의 승리의 외침입니다. “…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 (눅 23:34) 스데반의 승리의 외침입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행 7:60)


마지막으로 여러분을 악하게 대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이럴 때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자아가 즉각 반응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직도 남아 있는 나의 죄 된 본성이 나를 사로잡고 격렬하게 반응하고 보복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럴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보게 됩니까? 나의 자아를 보게 됩니다. 나의 본성을 보게 됩니다. 짐승처럼 발악하는,  … 주님 다시 오시기까지 완전히 죽지 않을 내 안에 있는 가인의 본성을 봅니다. 가인은 단지 질투심으로 동생을 죽였습니다. 우리도 단지 질투심으로 지체를 죽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인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어둠을 봅니다.


또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타인의 본질을 봅니다. 아무리 선한 자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죄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이며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가 나를 공격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 나의 마음에는 분노만이 가득했지만, 기도를 계속하면 나를 불쌍히 여기게 되다가 상대방이 너무 불쌍하게 생각이 되어 나를 불쌍하게 여길 여유조차 없어집니다. 이것이 자녀 된 사람의 기도 가운데 일어나는 일입니다. 순종하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에게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결론


저는 오늘 설교를 듣고 낙심하시는 지체가 있을까 봐 두렵습니다. 


저도 순종하는 일에 날마다 실패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전기를 읽어 보십시오. 그분들도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완전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완전하라 명하셨어도 지금 이순간은 누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세월의 가장 앞부분을 지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근심하는 한이 있더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근심이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고후 7:10)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기보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 다시 한번 돌이켜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 축복하시고 우리가 다시 일어나 걸을 힘을 주십니다. 정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요일 1:9–10)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께서 오늘 들려주신 말씀을 온전히 행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요?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에 대한 희망의 빛을 얼핏 보곤 합니다. 우리고 그분들처럼 그렇게 순종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행한다면 우리 교회가 어떻게 변할까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교회에서 세상에서의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가정이 그리스도인의 훈련장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교회 또한 그리스도인의 훈련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통하여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을 배워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교회에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과 다름없다면, … 교회가 세상에 하나님 백성만의 특별한 점을 상실한다면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교회에 빛이 꺼진다면 세상의 빛이 꺼집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원수를 사랑합시다. 나에게 상처 주는 지체를 위하여 오히려 기도합시다. 주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지체를 위하여 오히려 축복합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선을 행합시다.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임하게 해달라고 오히려 축복하며 금식하며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모두, …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아멘!

 

https://youtu.be/ZFZbmV0gE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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