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여라-1(마 5:43-48) / 산상수훈20
by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마 5:43–44; 48)
오늘은 산상수훈의 스무 번째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산상수훈의 절정에 도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섯 가지의 사례를 드셨습니다.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이 모든 말씀이 우리더러 완전해지라는 예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우리도 완전해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이 완전해지라는 명령임을 분명히 알 때, 우리는 여섯 사례, 특별히 여섯 사례의 절정인 원수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해를 많이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저렇게 들었다. …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완전해지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하늘 아버지처럼 완전해질 수가 없기에 완전하여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원수 사랑이라는 율법의 절정과 완전해지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이해하기 위해 마태복음에 나타난 말씀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대충대충 쓰인 책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마태복음 저자가 주도면밀하게 쓰도록 하셨습니다. 잘 지어진 건축물이 정교한 설계도를 가지고 있듯이 마태복음도 성령께서 계획하신 정교한 설계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원리가 중요하다
먼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여섯 가지 사례의 의미를 간단히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그리고 원수 사랑이죠. 예수님께서는 이 여섯 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어떤 원리들을 말씀하신다고 계속 강조해 드렸습니다. 즉,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들은 어떤 경우에 이렇게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저렇게 하라는 명령의 목록이 아니라고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의 목록이 아니라 삶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명령의 목록으로 지키려고 애쓰면 우리는 바리새인과 같은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문자가 아니라 정신을 찾아야 하며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원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살인에 관한 계명을 사례로 들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해 봅시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율법의 순종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대원칙을 천명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은 살인하는 행동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하도록 만드는 죄 된 마음을 금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죄가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죄의 뿌리에 인간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는, … 죄의 작동 원리를 예수님께서 첫 번째 사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통해, 죄의 뿌리에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을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하지 않으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원리는 바로, …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수가 없다는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자기 부인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이혼에 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어떤 원리를 말씀하셨습니까? 결혼이나 이혼과 같은 모든 인간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맨 처음 사람을 만드신 창조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우리의 구원론 이전에 우리의 창조론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 우리는 창조론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본래 뜻, 곧 창조 원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기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작동 원리입니다. 자연만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도 그리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주권에 놓여 있기 때문에 모든 말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맹세 자체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라고 생각하면 예라고 하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아니라고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신실해야 합니다. 이에서 지나치는 것은 모두 악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의 모든 삶이 얼마나 단순해지고 얼마나 솔직해질까요!
다섯 번째 사례로 (지난 주일에는) “악에 맞서지 말라”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교회 안팎,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중요한 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곧, 무저항 정신입니다. 얼마나 폭넓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입니까! 자기 권리보다는 의무를 충실히 하되 기꺼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원리만 해도 얼마나 폭넓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칩니까? 마지막 부분에서, 주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의 이기심이 작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해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전방위적인 삶의 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다섯 번의 사례에 관한 대략입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사례를 우리 삶의 원리라는 관점에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말씀, 원수 사랑에 관한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은 여섯 가지 사례 중 마지막으로써 우리 삶의 원리에 관한 말씀 중 최절정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모든 율법의 총화가 작동하는 원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배웠던 내용을 다시 살펴보는 이유는 말씀의 구조를 살펴보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계속 산상수훈의 구조를 훑어봅시다.
우리 삶 모든 영역에 적용해야 할 원리도 중요합니다. 동시에 구체적인 삶의 영역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리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이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리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영역들도 다루고 있음을 봅니다. 원리에 대한 이론과 함께, 그 원리의 구체적인 적용도 가르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위대한 주님이신 예수님은 위대한 교사이기도 하십니다.
여섯 가지 사례를 마치고 주님께서는 7장 뒷부분에 이르기까지 원칙의 구체적인 사례에 관해 계속 말씀하실 것입니다. 6장에서는 자선에 관하여, 기도에 관하여, 금식에 관하여, 재물을 축적하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최우선 순위에 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7장에서는 형제자매끼리 비판하는 정신에 관하여, 기도 응답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거짓 선지자에 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산상수훈 전체의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대략적인 구조입니다. 우리는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에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원리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삶이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중요합니다. 원리도 중요하고 삶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먼저 원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서신은 이러한 구조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을 말씀하십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원리에 관한 설명이 있습니다. 로마서의 경우, 1장부터 11장까지가 원리입니다. 11장 마지막에, 사도 바울은 복음에 감격하여 부르짖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롬 11:36) 그러고 나서 삶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롬 12:1)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삶에 관한 권면을 시작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입니다. 복음의 영광이 있고 그다음에 우리의 삶이 가능합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이 전체가 복음입니다. 복음의 영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다음에 우리의 실천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영광스러운 구조이며 이것이 복음의 영광스러운 논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적게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산상수훈 말씀에도 이러한 구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율법의 절정, 곧 원수 사랑의 영광을 깨닫지 못하면 이후에 말씀하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규범이나 실천에 관한 말씀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깐 멈추어서 산상수훈에 나타난 복음의 영광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백성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거나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십자가의 영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 하는 모든 것은 삶에 아무런 능력을 주지 못합니다.
높은 윤리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여섯 가지 사례가 예수님 당시 유대교의 주요한 논쟁거리였다는 사실을 소개하였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여섯 가지 사례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였다는 사실도 말씀드렸습니다. 여섯 가지 모두가 교회 공동체를 파괴할 중대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고 초대 교회 당시의 상황들이 여섯 가지 사례가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여섯 가지의 일련의 사례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가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이후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교회는 이런저런 모습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초점입니다. 이러한 관점과 맥락으로 본문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련의 말씀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보여야 할 윤리는 율법주의자들보다 아주 높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초반부터 이른바 “높은 윤리”의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참된 윤리를 설파하셨습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일련의 말씀들의 구조도 이 점을 말해줍니다.
여섯 가지의 사례에 앞서서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되살려 봅시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가 세상에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함을 규정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는 여섯 가지 사례를 말씀하시기 직전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리고 여섯 가지 사례를 마치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두 절이 여섯 가지의 사례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여섯 가지 사례의 핵심 내용이자 관통하는 수준입니다. 무엇이라 말씀하시며 시작하십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5:20)
그리고 무엇이라 말씀하시면서 여섯 가지 사례에 관한 교훈을 마치십니까?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마 5:48)
이 두 말씀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여섯 가지의 사례를 감싸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모든 신학적인 논쟁을 뒤로하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세상에서 가장 높은 윤리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베풀어주시는 교훈의 주제들을 들으시면서 눈치를 채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주제들입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주제들이 초대교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비롯한 삶 전체를 규정하고 이 말씀이 하나님 백성을 빚고, 교회를 빚어 왔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산상수훈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히 따라갈 수도 없는 초대교회의 능력과 강력한 복음 전도의 이면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한 초대교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고결한 삶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는, 주님께서 말씀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되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존재한 것입니다.
윤리적인 강조점 없이 단지 성령의 능력만을 강조하는 가르침은 교회 역사에서 항상 이단을 만들어 왔습니다. 초대교회 교인의 삶은 성령의 눈에 보이는 역사로만 규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균형 잡힌 공정한 시각으로 초대교회에서 성령께서는 어떠한 역할을 하셨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성도에게 부활의 증인이 될 능력을 제공하셨습니다. 깜짝 놀랄 놀라운 역사는 이에 대한 성령의 표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표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표적이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주목해서는 안 됩니다. 달에 주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가리키는 손가락, 즉 표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과 성령의 표적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예수님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의 영이신 성령은 또한 겸손한 영이십니다. 당신은 나타내지 않으시고 항상 예수님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결의 영이신 성령은 주의 백성을 성결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십니다.
이것은 성도의 마음에 작용하시는 성령의 보이지 않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어느 정도 강력한 능력인가 하면 성도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지라도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은 성도를 대신해서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실 정도로 성도의 거룩한 삶과 순종에 결정적이고 강력한 힘을 제공하십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교훈에 따라서 이러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산상수훈 말씀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싸움이 배움에 머물고 있다면 스스로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어렵다. 쉽다. 깨닫는다. 깨닫지 못한다. 진리를 깨닫는 기쁨이 있다. 없다. 들을 만하다. 잘 들리지 않는다. 잠이 온다. 오늘은 잘 들었네. 이런 싸움은 시작입니다. 우리는 지적인 싸움에서 더 나아가 실천의 영역에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미움과 사랑, 우리의 분노, 우리의 인간관계, 등등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산상수훈의 말씀은 단지 예수님 교훈의 요약이 아닙니다. 예수님 교훈의 요약 이상입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드린 대로 산상수훈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와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거부하거나 축소하거나 회피하거나 핑계 댈 수가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은 “원수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진 존재입니다!
마태복음을 마무리하며 마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남은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마지막 명령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 …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 28:18–20)
이 말씀에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이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산상수훈 말씀입니다. 사실상 모든 것이 아닐지라도 모든 것의 원리가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 말씀들에 담겨 있습니다. 교회가 계속되는 한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유효하며 우리도 이 가운데 있습니다. 산상수훈 말씀은 복음의 일부이며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충실하게 배워야 하며 세례를 받고자 하는 자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만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전승이며 우리도 이어가야 할 예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이것을 지키고 가르치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을 지키고 가르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제가 계속 인용하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오늘 본문 말씀과 관련해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자주 모여서 여러분 영혼에 요긴한 것들을 추구하시오. 그것은 마지막 때에 여러분이 완전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믿음의 온 세월이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다케 16:2)
이 기록이 성경은 아니지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이 말씀에 우리는 진심으로 아멘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주님 오실 것을 기다리는 자의 자세입니다.
말씀을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일에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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