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씨앗교회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마 5:8) / 산상수훈 7

by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https://youtu.be/V3-8DH3cLJM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마 5:8) / 산상수훈 7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 5:8)


팔복 말씀은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여덟 구절의 복에 관한 말씀은 각각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팔복 말씀은 하나님 나라 백성과 세상 사람을 분별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팔복 말씀은 우리 신앙의 거울입니다. 어떤 면에서 거울입니까? 하나님의 표준으로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은 어떤 표준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불러 모으신 모든 하나님 자녀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있을 것입니다. (벧전 1:7) 그때 불러 모으신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모습, 그것이 하나님의 표준입니다.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백성의 표준에 우리의 지금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이 팔복 말씀입니다. 그래서, 팔복 말씀이 우리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표준입니다. “마음의 깨끗함!”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추어줍니다. “나는 마음이 깨끗한가?” “나는 장래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을 볼 수가 있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구원의 여정에서 …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다고 봅니다. 심지어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더럽다고 말씀하십니다.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렘 17:9)


그런데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마음에서 깨끗함을 찾으십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만 당신을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표준에서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멀어도 한참 먼 것 같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자기 마음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죄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도 교회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도 자기 마음이 더럽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성경은 눈먼 사람, 곧 맹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스스로 멸망의 자식(요 17:12)임을 증명하게 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반면에, 선택하신 자녀들은 복음을 듣고 자기 죄를 분명히 봅니다. 똑바로 봅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믿은 하나님 자녀에게는 서서히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가난하게 되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고 동료 죄인들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자기가 얼마나 얼마나 더러운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믿은 하나님 자녀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래서 천로역정에 나오는 크리스천처럼 “멸망의 도시”를 떠나 “천국의 도시”를 향한 순례길을 떠나게 됩니다. 자기의 죄를 똑바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눈을 뜬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여정의 시작이며 그리스도인은 수많은 난관을 거쳐 결국 “천국의 도시”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멸망의 도시”와 “천국의 도시”, … 중간 어느 지점인가에 있는 모든 하나님 자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 5:8)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멸망의 도시”를 떠났다고, “아, 이제 되었다”라고 하면서 주저앉아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중간에 모든 죄의 짐을 벗는 단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죄의 짐을 벗는 것도 여정의 끝이 아닙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죄는 다양하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크리스천을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크리스천을 공격합니다.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사랑하는 주님과 대면하는 일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구원의 마지막 종착지인 “천국의 도시”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죄에서 깨끗하게 된 후에 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구원 여정에서 마음의 깨끗함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여정에서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도중에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토록 그리던 하나님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깨끗함은 하나님 백성에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할 날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궁극의 목표입니다.


눈을 뜬 사람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바리새인을 비난하셨습니까? 그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가르침은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가르침이 아니라 가르침과 행실이 다른 그들의 위선을 비판하셨습니다. (마 23:3)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길고도 엄중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길게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얼마든지 바리새인처럼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눈 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 안을 깨끗이 하여라. 그리하면 그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다. …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 (마 23:3–36)


우리에게도 바리새인과 같은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어떤 위험성입니까? 사람이 보기에는 의롭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할 위험성입니다. 더럽고, 냄새나서 구역질 나게 하는 자기 안에 있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거룩해 보이는 종교적인 덮개로 버릴 위험성입니다. 그러고는 “나는 깨끗하다”라고 스스로 선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리새인을 보면 알다시피 종교적인 덮개가 아무리 거룩하고 깨끗해 보이더라도 그런 것들이 마음이 더러움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끔찍한 냄새와 썩은 것들에서 삐져 쏟아져 나오는 구더기들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같은 본문에서 다른 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더러우면서도 위선을 떠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주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눈 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 눈 먼 인도자들아! …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 눈 먼 자들아! … 눈 먼 인도자들아! … 눈 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 안을 깨끗이 하여라. 그리하면 그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다. …” (마 23:3–36)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성경을 묵상한다고 하더라도 말씀의 빛으로 자기 안의 어둠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의 영혼은 지금, …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한때 눈을 떴다가 다시 소경이 된 것과 같습니다. 설사,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직접 귀로 듣는 은사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말씀의 빛이 자기 안의 어둠을 몰아내도록 허락하지 않고 계속 막는다면, … 그런 사람은 구원의 희망이 끊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늘씨앗교회 지체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씻긴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목욕한 자에게는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으나 날마다 발을 씻어야 할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요 13:10)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 안에서 강력하게 계속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 말씀의 빛이 마치 레이져 수술칼처럼 우리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분리하고, 우리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 내고, 근육과 인대와 뼈가 붙어 있는 우리 안의 깊은 곳에서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드러냅니다. (히 4:12) 심지어, 우리가 자고 있을 때도 성령께서는 쉬지 않으시고 우리 무의식 깊이 있는 더러운 것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시 121:4)


복음의 빛이 처음 우리를 비추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뜬 우리에게 맨 처음 보였던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이셨습니다. (요 14:19) 예수님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신 것입니다. (고후 4:6)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예수님 말씀이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요 14:6) 예수님이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당신의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 (골 1:13) 태양보다 밝은 말씀의 빛 앞에서 우리는 우리 안의 더러운 것들을 더욱 뚜렷하게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눈을 뜨게 하시고 다시 안수하셔서 뚜렷하게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막 8:25)


하나님의 열정


세상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눈을 뜨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문젯거리는 모두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문제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로부터 나온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인간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 (마 15:18–20)


하지만 세상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의 환경을 바꾸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건전한 시민 교육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종교인들은 윤리와 도덕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바르게 시행되면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오류입니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인류의 오류입니다.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가장 추악한 악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마음이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에서 인간을 더럽히는 온갖 더러운 행동이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창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가진 새로운 하나님 백성을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하나님 백성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실 것이다.” (겔 11:19-20; 36:25-28) “새 마음을 가진 새로운 인류”, … 이것이 모든 선지자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우리를 깊은 어둠에서 구출하여 밝은 빛으로 옮기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지 열정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 백성의 더러운 마음을 완전히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열정, 하나님의 의지, 성령의 능력이 하나님 백성을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고 확언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눈처럼 깨끗하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서 실제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에 복음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선택하신 백성을 거룩하게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에 순복하는 자는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으로 드러날 것이며, 이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자는 마지막 심판 날에 멸망의 자식들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권세를 들여다보면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에 합당하게 우리를 당신의 능력으로 변화시키실 것을 믿고 인내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하나님 백성은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하나님 백성은 자신의 모습이 거룩하신 주님의 모습에 미치지 못하기에 불만족스러워합니다. 진정한 하나님 백성은 하루하루를 주와 같이 될 것을 소망하며 보냅니다. 거룩함을 소망하며, 기도하며, 행동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통된 특성입니다.


분할되지 않은 마음


깨끗한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일까요? 당연하게도, … 성경은 거룩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문제, 마음이 깨끗해지는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산상수훈 뒷부분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도 이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마 6:22–23)


여기서 개역개정성경에는 “성하면”이라는 표현에 “순전하면”이라는 각주가 붙어 있습니다. 여기에 쓰인 헬라어(ἁπλοῦς⸃)는 “순결하다”, “순수하다”, “속임이 없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영어 성경에는 single이라고 번역하였는데(KJV) 영어 표현으로 single devotion이라고 하면 “헌신”으로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온전히 드린다는 표현입니다.


우리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똑바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곁눈 팔지 않고 오직 한 곳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눈이 “성하다” 혹은 “건강하다”라는 표현의 의미입니다. 이 시편 기자의 마음이 곧 순결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표현으로는 이 사람의 눈이 성하기 때문에 온 몸이 밝을 것입니다. 시편에는 이와 유사한 표현들이 매우 많이 나옵니다. 


“주님,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진심으로 따르겠습니다. 내가 마음을 모아,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겠습니다.” (시 86:11)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간구합니다. 주님,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진심으로 따르겠습니다. 내가 마음을 모아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겠습니다. 마음을 모아 주님의 이름을 경외한다고 하였습니다. 개역개정성경은 “일심으로”, … “일심으로”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입니다. 나뉘지 않은 하나된 마음, … 이것이 순결한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문제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나뉜 것입니다. 마음을 모아, 일심으로 주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더러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약 4:8)
두 마음을 품는 것에서부터 인간의 모든 문제가 비롯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은 완벽한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깨끗하지 못한 마음, 나뉜 마음, 일심으로 주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마음,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나눠진 마음, 분할된 마음으로부터 인류의 모든 문제가 비롯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자 원하더라도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근본적으로 일치되지 않고 나뉘어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지만 우리의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나의 일부는 하나님을 경배하면서도 다른 일부는 다른 것을 원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롬 7:21–23)


여러분, 갈등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말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법입니까? 아니면 내 마음의 법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법에 속박되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아니면 죄의 법에 속박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법을 원하신다면 여러분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멸망의 도시”를 떠날 때만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도시”에 이를 때까지 내내 우리의 여정에서 굳게 붙들어야 할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우리를 인도하시는 지도자요 선생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반드시 볼 것이라는 소망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천국의 도시”에 다다르면 소망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미 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미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의 증거를 실제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히 11:1; 고전 13:13) 우리가 도착한 “천국의 도시”에 남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문제는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을 향한 투쟁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열심을 따라 모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같이 거룩한 삶을 지향하였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벧전 1:16)라는 말씀을 당연히 여기고 팔복 말씀 뒤에 나올 예수님의 말씀인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 5:48)를 삶의 목표로 삼고 거룩을 향해 달음질쳤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하나님 백성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역사를 보면 교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삶을 깨끗한 마음으로 지향했던 요한 웨슬리를 따르는 무리가 교회의 핍박을 얼마나 많이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시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빛되신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 12:14)라고 강하게 권면하였습니다. 누가 거룩함을 간절히 소망하는 하나님 백성의 열정에 찬물을 껴얹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귀가 아니면 누가 하나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에 반대하여 거룩해지지 않고서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말합니까? 


믿을 만한 믿음의 선진 가운데 한 분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마귀가 거짓말로 하나님 자녀들을 속이고 있다고 간파하였습니다. 마귀는 교회를 향해 속삭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통하여,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옮겨진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는 전혀 필요 없다. 그분 안에 너무나 풍성은 의와 거룩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어떤 의가 없어도 된다.”


여러분, 거짓말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마귀가 얼마나 교묘합니까! 마귀의 이 말은 얼마나 옳습니까! 그러면서도 얼마나 악합니까! 옳은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악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말하는 점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교활하게도 순전한 하나님 말씀에 작은 오물을 섞음으로써 성도의 마음을 더럽히고 불타오르는 거룩을 향한 불꽃에 찬 물을 껴얹습니다. 


지혜로운 성도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 5:8)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 5:48) 그리고 사도의 교훈들이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 (고전 6:9)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고후 3:18)


구원의 완성을 향하여 …


사랑하는 하늘씨앗 지체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 5:8)


이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는 복된 말씀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의 여정을 가면서 눈을 높이 들어서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높은 곳에 계신 우리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 12:2)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당신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요 14:15; 14:21; 15:10; 롬 13:9; 요일 3:23; 4:21; 5:2; 요이 6) 주님을 사랑하는 하나님 자녀에게는 주님의 계명은 절대 무겁지 않습니다. (요일 5:3) 


사랑하는 하늘씨앗지체 여러분,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불만을 가지지 맙시다. 환경은 우리를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환경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도 못하고 우리를 주님께 더 가까이 하게 만들지도 못합니다. 천국같은 환경을 주어진다고 주님과 한 치라도 더 가까이 갈 수가 있겠습니까? 환경을 불평하지말고 우리 마음의 더러움에 대해서 불평합시다. 우리가 주님을 닮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집시다. 우리를 구원해 주셨음에도 우리가 거룩함에 진보가 더딘 것에 대해서 불만족스러워 합시다. 더욱 마음이 가난해져야 하겠습니다. 더욱 슬퍼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죄인의 괴수임을 알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더욱 온유하고 겸손해져야 하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해야 하겠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를 속박한다고 느끼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온전케 율법은 자유케 하는 율법입니다. (약 1:25) 진정한 하나님 백성은 율법에 속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남아 있는 죄의 권세에 속박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망하고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히 12:4)


마지막으로, 복음의 에베레스트라고 부르는 로마서 8장 뒷부분을 연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롬 8:23-25)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브리서의 믿음 장을 보면 모세도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 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세처럼 인내해야 합니다. (히 11:27)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8:26-27)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일하심을 우리가 막지 않는다면, 원한다면 성령은 우리를 반드시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성령은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롬 8:28–30)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아무 곳에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 즉 우리의 구원과 관련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 구원의 궁극의 목적 한 가지를 설파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될 운명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고 의롭게 되었고 영광스럽게 될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요일 3:2–3) 아멘!

 

https://youtu.be/V3-8DH3cL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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