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씨앗교회

그리스도인과 율법 (마 5:17-18) / 산상수훈 12

by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인과 율법 (마 5:17-18) / 산상수훈 12

 

“원칙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원칙이 흔들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삶도 흔들리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신앙의 원칙은 무엇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 신앙의 원칙이 다름아닌 “율법이나 선지자”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 5:17–18)


율법이나 예언자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이라는 예수님의 표현은 신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써 구약성경이라는 뜻입니다. (마 22:40; 눅 16:16; 눅 16:31; 눅 24:44; 행 13:15; 행 28:23; 롬 3:21) 설교 원고에는 많은 구절을 적어 두었는데 여기서는 한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요 1:45)에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다.” (요 1:45/공동번역개정) 빌립의 말에서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은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여기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구약성경을 없애려고 온 것이 아니다. 나는 구약성경을 완성하려고 왔다.”


율법을 약화하려는 마귀의 시도


예수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초대교회 때부터 기독교 신앙에서 구약성경을 없애려고 하거나 약화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 일부 그리스도인이 잘못된 가르침의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시작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가 본격화되었는데, 그때부터 기독교 내에서 유대교의 영향을 지우려는 시도가 본격화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구약성경 전체를 인정하지 않고, 신약성경 중에서 유대교의 영향력이 강한 책들은 무시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의 글만을 기독교 신앙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 중 극단적인 일부는 이단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 마르시온) 오늘날에도 기독교 신앙에서 구약성경의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경향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율법이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다고 간주하고 너무나 쉽게 무시하고 배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대다수의 인본주의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전쟁이나 학살, 혹은 윤리적인 부분들을 예를 들며 기독교 전체를 비판합니다. 일부 진보적인 그리스도인 중에는 구약성경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신약성경만 강조합니다.


이단은 아니더라도, 구약성경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잘못된 가르침이 복음주의 기독교 안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교훈과 사도 바울의 교훈이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기독교, 바울의 기독교라는 말을 드러내 놓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예수의 기독교는 율법을 중시하는 구약적 기독교이며 사도 바울의 기독교는 은혜를 강조하는 신약적 기독교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은 율법, 신약은 은혜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성경을 읽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런 프레임으로 성경을 봅니다. 보수주의자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저작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복음서와 야고보서 등 겉으로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을 의도적으로 높이기도 합니다. 진보주의자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모두가 구약성경과 율법을 약화하려는 마귀의 시도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대원칙


우리는 구약성경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합니까? 귀를 활짝 열고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의 사실상 기독교 신앙의 대원칙을 세우셨습니다.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의 기초이며 우리는 절대로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약화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그리하여, 신구약 성경 전체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 우리 삶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저는 그래서 여러분에게 성경읽기표를 사용하기를 권장합니다. 성경읽기표를 사용하면 여러 가지 유익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유익이 신구약 성경을 균형 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아이들과 초신자들에게 구약의 학살이나 잔인한 전쟁, 혹은 피 흘림이 있는 제사들에 관한 내용을 인간적 관점으로 배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신약성경만 별도로 제작하여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성경이 구약성경보다 쉽다고 생각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 아마도 가장 어려울 때는 끝없는 족보나 사람 이름들이 계속 나올 때,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제사 의식 등이 자세히 나올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이해가 잘 안되더라도 그 안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참고도서 등을 활용해서라도 이러한 말씀들이 신약성경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율법의 구성


주님의 말씀에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신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율법은 크게 보아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국가법과 의식법과 도덕법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주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나옵니다. 


먼저, 국가법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에 주신 율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사람들과 사람들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판결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내용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법입니다.


그다음에 의식법이 있습니다. 의식법은 제사나 위생에 관련된 율법입니다. 번제와 소제 등 매우 복잡해 보이는 제사에 관한 절차와 어떤 것들을 먹어야 하고 어떤 것들은 먹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율법을 일반적으로 의식법이라고 구분합니다.


세 번째로, 도덕법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도덕법으로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도덕법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영원히 지켜야 할 영속적인 도덕 원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지요? 율법이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시고 외우셔야 합니다. 국가법, 의식법, 도덕법입니다! 일단 율법의 구성을 염두에 두고 주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의 선언: 율법의 절대성


주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성하러 왔다는 말씀을 어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의미는 율법이 뭔가 부족하여 예수님께서 부족한 면을 보충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한때 많은 설교자가 이렇게 해석했지만, 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조각 그림의 빠진 부분을 내가 보충하겠다”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여 이루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헬라어 의미가 그렇습니다. (πληρῶσαι·)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이루겠다, 온전히 성취하겠다, 온전히 순종하여 지키겠다는 의미입니다.


한 가지 더 오해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천지가 없어지는 때”는 어느 때를 의미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즉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틀렸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천지가 없어지는 때가 아닙니다. “천지가 없어지는 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사라지는 때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 백성과 백성에게 축복으로 주신 땅조차 모두 사라지는 때를 말합니다. 곧, 이 말씀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율법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님의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얼마나 강하게 강조하시는지 보십시오.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는 때”를 언급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진정으로”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다른 번역에는 “진실로”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말씀은 헬라어로 “아멘”(ἀμὴ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극히 중요한 진리를 선언하실 때마다 사용하시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또한 한글 번역에는 없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왜냐하면 γὰρ)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씀을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작은 것 하나라도 변경되지 않고 모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문에는 “가르”(왜냐하면)라는 접속사가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자의 말을 온전히 이루셔야 하는 이유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온전히 이루러 오셨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율법이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도 변개되지 않고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절대적인 선언입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가지신 모든 권위로 이 말씀에 도장을 찍으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즉 “아멘”이라는 도장이 주님의 선언에 찍혀 있습니다.


율법과 예언자의 말을 이루심


예언을 한번 살펴봅시다. 예언은 어떻습니까? 구약성경에 기록된 예언자의 말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보면 참으로 힘이 되지 않습니까! 예언의 성취는 우리 앞에 남겨진 예언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보증이 됩니다. 아마 그래서 우리에게 힘이 되고 은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탄생과 성장, 사역에 관한 예언을 볼 때마다 놀랍고 은혜가 됩니다. 주님의 인품과 십자가 사역에 관한 이사야서 53장의 예언을 생각해 보십시오.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왜 감추어졌는지, 어떻게 감추어질 수가 있었는지, …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날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구약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들과 옛 성도들의 증언이 복음과 다름없는 큰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에게 은혜가 됨을 경험합니다. 주님의 죽음, 부활과 승천,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말씀드릴 수가 있고 여러분이 읽고자 하시면 믿음의 선배들이 저술하신 수십 권의 책이 있습니다. 


율법을 한번 살펴봅시다. 율법은 어떻습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떻게 성취하셨는지, … 보면 볼수록 은혜가 됩니다. 때가 차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놓이게 하셨습니다. (갈 4:4) 한계가 있는 우리의 지성으로 이런 말씀의 참 의미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율법 아래 놓였습니다! 놀라운 성육신 진리의 한 단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원하신 아들을 율법 아래 두게 하시고 그 율법을 순종하게 하신 일보다 율법의 절대성을 선명하게 계시하신 사례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율법 아래 놓이셨습니다!


그리고, … 우리 주님께서 율법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자의 산증인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에 절대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만 순종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절대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잘못과 흠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고, 거짓 증언자들을 동원하기 전에는 율법으로 주님을 고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순종은 주님을 결국 십자가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이 율법에 제정하신 죄 사함의 제물이 당신임을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레위기와 신명기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여러분! 율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주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순전히 감상적인 관점에서만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에 대해서 말할지라도 전혀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꾸짖으신 예루살렘의 딸들과도 같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생각하며 우는 여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눅 23:28)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며 단지 우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도덕적인 충격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십자가의 목적이 죄인의 굳은 마음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며 우리가 충격을 받아 십자가를 바라보고 죄 사함의 감사함을 마음에 품고 은혜 가운데 올바로 살게 하려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종교적 열정을 위한 불쏘시개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십자가는 우리 속에 종교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 열정을 불어넣기 위한 도구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오직 율법의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율법은 죄를 정죄하며 심판합니다. 율법이 죄에 대해 내리는 선고는 죽음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입니다.” (롬 6:23) 하나님의 영원하고 거룩한 모든 율법이 “죄는, 곧 죽음”이라고 끊임없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어떻게 온전히 이루셨습니까?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모든 율법의 요구였습니다. 율법의 심판은 행사되어야 했고 주님께서 결국 온전한 순종으로 율법을 이루셨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다음의 말씀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확실하게 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율법을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가 십자가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오늘 본문 말씀들을 사도들도 아멘으로 확실하게 화답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라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 8:2–4)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율법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이루신 예수님의 사역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율법의 의를 성취하셨습니다. “너희도 그래야 한다.”라는 것이 앞으로 살펴볼 산상수훈 말씀의 개요입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우리 그리스도인도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습니까?


성령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한 주님의 계획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처럼 주님의 백성들도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사도는 이렇게 답합니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 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 8:2–4)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지만 마법처럼 되는 기적이 아니라 절차와 과정이 있는 기적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영단번에 이루셨지만(히 10:14) 우리 그리스도에게는 절차와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의 키워드가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 이것이 조건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 이것이 예수님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보면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였고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이 전혀 없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복종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굴복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 때,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렘 31:31–33) 아멘!


예언자의 말이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 8:9)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시겠지요!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롬 8:4/개역개정)


우리에게 남은 율법


사랑하는 하늘씨앗교회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모든 율법을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율법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어야 합니다. 앞으로 예수님은 산상수훈 말씀을 통해서 자세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율법 중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무엇이 아직 남아 있습니까?


레위기 등에 기록하신 복잡한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성전의 휘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둘로 찢어졌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레위기 율법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히브리서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단이며, 정결을 위한 놋대야이며,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번제물이십니다. 우리의 희생 제물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우리도 구약 성도처럼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의식법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의식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에 관한 더 깊은 비밀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골 2:2)


국가법은 어떻습니까? 국가법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를 위해 쓰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제 신정국가가 아닙니다. 신정국가는 이제 우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 말기에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마 21:43)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이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 (벧전 2:9–10)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 외에 우리에게 부과된 국가법도 더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도덕법뿐입니다. 앞으로 주님께서는 산상수훈 말씀을 통해서 도덕법을 주로 가르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늘씨앗교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법을 사랑합시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합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9–10/개역개정)


사랑하는 하늘씨앗교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성령을 따라 살아갑시다. 날마다, 항상, … 육신의 요구를 거절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합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킬 힘을 주셨습니다. 정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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