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씨앗교회

좁은 길 (마 7:13-14) / 산상수훈 36

by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마 7:13–14)

산상수훈의 중심 교훈은 실제로는 지난 주일에 설교한 12절로 끝이 납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전체의 교훈을 요약해 주셨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당신이 대접을 받고자 하시는 그대로 당신의 백성들을 대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께서도 당신이 대접을 받고자 하시는 그대로 당신의 제자들을 대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 된 우리도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논리입니다.

오늘 본문부터, 7장 마지막까지 산상수훈 말씀이 이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말씀하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에 뒤이어서 하시는 말씀들을 보면 오늘 말씀을 더욱 잘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경을 펴서 한 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주님의 계명은 전하면서도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여 주여”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향해서 “내가 너를 모른다. 내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듣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주님의 계명을 듣고 지키는 자가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산상수훈 마지막까지의 말씀입니다. 7장 전체의 주제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흐름에 비추어보면 오늘 말씀이 더욱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주님의 백성들을 엄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멸망을 향해 가는 사람은 많다. 생명을 향해 가는 사람은 적다. 너희는 반드시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한다. 너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느냐?” 이것이 오늘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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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을 그림처럼 묘사하십니다. 우리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길을 거대한 벽이 가로막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넓은 문 하나가 있고 넓은 문으로는 넓은 길이 이어집니다. 많은 사람이 넓은 문을 지나 넓은 길을 갑니다. 그 옆에는 좁은 문이 놓여 있고 좁은 길이 이어집니다. 몇몇 사람만이 좁은 길을 통과하여 좁은 길을 갑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저와 여러분에게 좁은 문을 선택하라고 강하게 권면하십니다. 이것의 본문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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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준비하다가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아마 많은 분이 보셨을텐데요. 매트릭스에 보면 빨간약과 파란약이 나옵니다. 빨간약은 잠에서 깨어서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해 주는 약입니다. 파란약은 잠에서 깨지 않고 안락하고 평안한 매트릭스라는 가상 현실에서 계속 살게 합니다. 여러분은 빨간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파란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말하자면 빨간약은 좁은 문이며 파란약은 넓은 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넓은 문을 선택하면 어떻게 됩니까? 안락한 삶이 이어집니다. 막연하게 삶은 좋은 것이며 죽고 나서도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막연한 바람에서 살게 됩니다. 결국은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직행하여 대지의 영양분으로 끝납니다. 저와 여러분이 좁은 문을 선택하면 어떻게 됩니까? 죽음과 같은 삶의 진정한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이 이어집니다. 참된 삶을 위해 나아가면서 매일 매일 힘든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주님은 사실상 저와 여러분에게 빨간약을 먹으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러한 말씀은 사실상 하나님 백성을 향한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보라,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 (신 11:26) 또 이렇게 말한 적도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 (신 30:15)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향해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전한 말씀이 이루어졌듯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우리 주님의 말씀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새한글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세요. 망하는 데로 이끌어 가는 문은 넓고, 그 길은 널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이끌어 가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이 비좁은지요! 그래서 그것을 찾는 사람은 몇몇뿐입니다.” (마 7:13-14/새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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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에 사탕발림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있습니다. 소위 “쉬운 구원”을 설교하는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입니다. 소위 “값싼 은혜”를 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주님과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진실을 포장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넓은 문과 좁은 문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은 쉽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온 세상 사람에게 미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습니다. 또, 온 세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실 때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값없이 온 세상에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 온 세상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심판을 기준으로 보면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전심을 다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8)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가 있지만 전심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 2:21; 롬 10:13) 청함을 받은 사람을 많지만 택함을 입은 사람은 적다고 하셨습니다. (마 22:1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 7:6)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이처럼 “좁은 문”은 공개되어 있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디모데전서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딤전 2:4)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아니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좁은 길을 걷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멸망으로 치닫는 이유를 단 한마디로 설명하셨습니다.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을 걷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찾는 사람이 적다. 넓은 문을 지나 넓은 길을 걷는 것은 아주 쉽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길로 간다.”

아까 말씀드린 매트릭스라는 영화에 레이건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자기가 빨간약을 먹은 것을 후회하는 인물입니다. 레이건은 결국은 좁은 길을 포기하고 넓은 길을 택합니다. 넓은 길이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결국은 당장의 풍족하고 안락한 삶을 택합니다. 빨간약을 먹은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면 동료를 배신하고 과거로 돌아가겠습니까? 아마 가룟 유다도 레이건과 같은 동기로 예수님을 배신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믿음의 싸움을 그치고 과거의 안락한 삶으로 돌아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가 넓은 길을 기웃거리고 믿음의 싸움을 그쳤다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넓은 길의 끝에는 멸망이 있다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좁은 길이 왜 어렵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이 왜 그토록 힘이 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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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비주류이기 때문에 그 삶이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주류와 단절되어 스스로 비주류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 말씀 전반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하고 이례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 … 하늘 아버지의 특성을 나타내는 사람, …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한 번도 대중화된 적이 없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유사 이래 항상 별종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특이한 그리스도인은 소금과 빛으로 역사를 선도해 왔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의 하나님 자녀의 운명입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말씀하십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삶이 힘듭니다.**

비주류의 인생은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 누가 스스로 비주류의 선택한 인생을 이해 할 수가 있겠습니까? 때로 형제자매도 부모도 배우자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개인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우리 인간을 개별적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구원과 심판의 영역에서 우리 각자는 외로운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에 연좌죄는 없으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짐을 져야 합니다.

우리가 넓은 문과 좁은 문을 마주하고 설 때, 우리 마음에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음성을 듣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너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이제부터 너의 부모나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심지어 너희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가 없다.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될 수가 없다. 사람은 각각 자기의 짐을 져야 한다. 너는 홀로 태어났으며 홀로 죽을 것이며 홀로 내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요 1:13; 눅 14:26-27; 갈 6:5)

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에 굴복하고,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경험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도 더 힘이 듭니다. 이것이 좁은 문이며 좁은 길입니다. 구원의 문은 오직 나 혼자만 통과할 수 있는 회전문과도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좁은 길을 가는 것은 철저하게 우리 본능을 거역하는 삶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에는 우리 자아가 있을 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자아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삶에 대해 말씀해 오셨습니다. 결론 부분에 이르러 주님께서 오늘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삶은 우리의 본성에 어긋나는 삶입니다. 우리의 타고난 본성은 주님께서 산상수훈 말씀을 싫어합니다. 우리의 본능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능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공평이며 정의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에 주님께 순종하는 길이 우리에게 좁은 길입니다. 우리 육신을 죽이고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않으면 주님의 계명에 순종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너희 본성이 좋아하는 일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세상의 규율이 아니라 나의 규율에 따라 살아야 한다.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이것이 좁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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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힘든 길을 우리가 왜 가야 합니까? 이 길이 유일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모두가 생명에 이르도록 초청하고 계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님의 초청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닌 우리 주님께서 우리보다 앞서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으셨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좁은 길 끝에 생명이 있다고 확언하셨습니다. 이것이 이 말씀에 저와 여러분이 순종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실상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가신 길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가신 좁은 길을 기가 막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좁은 길을 가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새한글 성경 히브리서 5장 7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시는 날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나아가서 매달리는 기도와 하소연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힘주어 외치고 눈물을 흘리면서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공경하여 받드신 것을 보시고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아들이시지만, 겪으신 일을 통해 순종을 배워 익히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근거가 되셨습니다.” (히 5:7-9)

주님께서 가신 길이 좁은 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 가신 그 길만이 금생의 축복과 내생의 축복이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 위에 계실 때에 고난만 겪으셨겠습니까? 좁은 길을 걷는 우리 주님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과 위로와 축복이 함께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의 표현대로 하늘 아버지께서는 항상 주님과 함께 계셨고 하늘 아버지께서 항상 주님 오른쪽에 계셔서 주님은 흔들리지 않고 좁은 길을 걸으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 임재 직후에 사도 베드로가 증언하신 바 있습니다. (시 16:8; 행 2:2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정말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3:17) 왜 기뻐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죄인들과 같이 되셔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함으로 넓은 문을 포기하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 또 한 번 하늘에서는 천둥처럼 하나님의 기쁨의 음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 17:5) 왜 기뻐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때 성경에서 당신에 관해 기록하신 모든 말씀들을 다시 한번 펼쳐보시고 십자가에서 죽기로 확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눅 9:31) 진정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 좁은 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좁은 문을 통과하고 좁은 길을 걷는 성도에게만 하늘의 위로와 하늘의 능력과 하늘의 축복을 주십니다. 정말입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을 걷지 않으신다면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절대로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경험하신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우연일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하늘의 위로와 하늘의 능력과 하늘의 축복이 더 필요하다고 여기신다면 오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늘의 위로와 하늘의 능력과 하늘의 축복에 관한 온갖 달콤한 말씀들은 좁은 문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좁은 문을 통과해서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성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쓸데없이 가능성 없는 사람에게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베푸시겠습니까?

성도는 좁은 길을 걷고 있기에 위로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은 평생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는 휴전이 없습니다. 세상일은 점점 쉬워지기 마련이지만 좁은 길은 점점 더 좁아져 갈 뿐입니다. 성경은 성도가 가는 길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군은 극히 소수입니다. 적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우군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은 내가 싸워 내야할 싸움이 있습니다. 길 양쪽에는 적이 우글우글합니다. 한 쪽은 얼르고 달래며 심리전을 펼치고, 다른 한 쪽은 대 놓고 나를 반대하며 나를 밀쳐서 길 밖으로 튕겨나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휴전이 없습니다. 저 하늘에서야 모든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됩니다. (계 14:13) 우리는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도록 운명지어진 특별한 존재입니다. (딤후 4:7)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온 힘을 다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애를 낳자마자 내 팽개치는 그런 부모입니까? 왜 하늘의 지혜와 힘을 넘치도록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좁은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주십니다.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성령님을 주십니다. 하나님 자녀가 새 생명으로 거듭날 때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녀가 중생하고 하나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살 때, 성령님의 역사가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좁은 문을 지날 때 성령님을 보내주시고(딛 3:5), 그리고 우리가  좁은 문을 지나서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우리 안에 가득채워 주십니다. (엡 5:18)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 소망의 보증금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좁은 길로 부르신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서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구름떼와도 같은 허다한 증인이 우리의 믿음의 싸움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좁은 길을 걷는 성도가 처한 영적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살았던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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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결국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계속 우리에게 말씀해 오신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소위 “값싼 구원”, “쉬운 구원”을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값싼 구원”, “쉬운 구원” 같은 것은 거짓 복음이며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결국 좁은 문과 좁은 길에는 우리의 옛 자아가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너무나 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은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이며 소수의 사람만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외로운 길이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믿음의 친구들, 믿음의 선후배 때문에 외롭지만은 않습니다. 세상 친구과는 이 세상의 것들은 나눌 수 있을지라도 영원한 축복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때로는 오해를 받기 때문에 좁은 길은 그래서 외로운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마 10:34-3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좁은 길을 걸을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부모와 자녀와 부부와 고부간에 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살 때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분리가 됩니다. 물론 실제적인 분리가 아니고 영적인 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바로 이 좁은 길을 가라고 하십니다. 이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예수님께서 가신 영광스러운 길이며 십자가의 길 끝에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살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산상수훈이 지향하는 삶은 산상수훈을 베풀어주신 우리 주님께서 친히 가셨던 길입니다. 주님의 품성, 주님의 사역, 주님의 사랑, 주님의 기도, 아버지 앞에서의 주님의 삶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전하여라는 주님의 당부처럼 내가 조금이라도 하늘 아버지를 닮아갈 수가 있다면 내가 얼마나 기쁠까요? 예수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기쁨이 되셨듯이 나도 하늘 아버지의 기쁨이 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님의 초청입니다. 주님만이 우리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만이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 주님만이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누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당신의 자녀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있게 좁은 문을 통과해 좁은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디도서 말씀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딤후 3:12)

주님을 따르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오른 손이 나를 굳게 붙드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늘의 축복을 이 땅에서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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