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마 6:9b-10) / 산상수훈 27
by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마 6:9b–10) 아멘!
지금 우리는 몇 번에 걸쳐서 주기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하심으로써 주기도를 우리 기도의 모범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마도 주기도를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보아야 할 교과서이다”라고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많이 말한 대로 기도는 오직 기도로만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좋은 교과서가 있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이 기도에 관한 주님의 모든 교훈을 모두 다 이해하더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신 부분을 살펴보았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늘에 계십니다. 즉,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분은 초월해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좋은 것들을 주기를 진정으로 바라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친밀성, 둘 다를 붙잡아야 합니다. 초월성만 의지해서도 안 되고, 친밀성만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초월성과 친밀성 모두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어때야 합니까? 초월해 계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 아버지, … 마음에 두려움과 따뜻한 사랑을 가득 안고, … 하나님께 나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부르짖는 것이죠.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것이 기도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부터는 주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나? 우리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한번 보십시오.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 앞부분은 하나님과 관련된 기도입니다. 명확하죠. 그리고 뒷부분은 우리와 관련된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기도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과 관련된 요청입니다.
우리와 관련된 요청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십시오.”
“하나님”과 “우리”가 동일한 비율로 되어 있는 것도 약간의 의미가 있습니다. 동일한 비율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 절반, 우리를 위한 기도가 절반입니다. 이런 교훈을 생각할 수가 있겠죠. 우리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위해서 기도해서도 안 되고, 우리를 위해서만 기도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만 계속 간구하는 것을 좀 죄송스럽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죄송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구체적인 필요를 말씀 안 드리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의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은 왜 자신이 정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아뢰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할까요? 주님께서는 이런 경향이 균형을 잃었다는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 하나님께 좀 더 적극적으로 아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만 계속 말씀드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기도는 별로 드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할까요?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걸까요? 주기도의 비율을 생각하면 이런 사람들도 균형을 잃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관련된 것, 그리고 우리와 관련된 것 (모두를 기도하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그렇게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죠.
하지만 동시에,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관련된 기도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너희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너희의 기도의 우선순위는 너희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기도하는 것이죠.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기도를 하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한다면,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먼저 기도드리고 우리의 필요를 나중에 기도드리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다른 지체들과 기도할 때 다른 사람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건 못된 짓이죠. 다른 사람의 기도를 훔쳐 들어서는 안 되지요. 그런데, 만약에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신비한 능력을 지금 나에게 주셔서 다른 사람의 기도를, … 누구의 기도라도 이렇게 들을 수 있는 그 신비한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기도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 기도하는 사람의 바람, 더 나아가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의 방향, 마음의 욕망, … 이런 것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할 때 그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마음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정말 무엇을 바라는지, … 우리가 진정 무엇을 기대하고 소망하는지, … 그것을 말해주십니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놀랍게도요. 우리의 지성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 특히 우리의 감정이 사람을 이끕니다. 사람은 자기가 진정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의 열정, 우리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도 있다면, … 그 원하는 그 마음의 갈망, 우리 마음의 욕망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우리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필요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하나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의 마음의 정열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그것을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명백하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우선이 되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입니다. 하나님 이름이 거룩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우선입니다. 바로 주님께서는 그것을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스도인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단순한 말로 정리할 수도 있다고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저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아서 헤매는 이 회색과 같은 세상에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지, 분명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사는가?” 그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만약에 여러분에게 “너 왜 사니?”라고 물어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너 왜 사니?” 너무 힘들어서 친구가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너 왜 사는 거니?”혹은, 너무 친구가 안타까워서 물어볼 수도 있겠지요. “너 왜 사니?” 아무튼, 그런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답이 너무 명확합니다. 성경 전체가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
빼도박도 못합니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그것을 위해서 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 그리스도인은, … 그럼 친구가 어이가 없어서 묻겠지요? 대부분 비웃겠지요? “그래? 나 같으면 죽겠다. 차라리 …, 무슨 기쁨이 있다고! 무슨 즐거움이 있다고!” 그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즉시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나의 기쁨이야. 사랑하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야.” 그러면서 (우리가) 되묻겠죠. “넌 도대체 왜 사니?”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사실상 당시에는 잘 알지 못해도, … 세례받을 때 우리는 이것을 벌써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앞에서, …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인간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1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내 심장이 뛰고 있는 이유는 너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랬습니다.
처음 믿을 때는 확실치 않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는다면 점점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은 점점 그것으로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왜요? 계속해서 말씀이 그걸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설교자의 잘못이거나, 내 마음이 길가나, 돌밭이나, 아니면 가시덤불이거나, … 아니면 내가 버림받은 자거나, …. 왜요? 성경이 계속 그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계속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유혹과 시련과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 그리고 기도하고 응답받고, … 응답받지 못하고 거절당하고 절망 속에서 부르짖고, … 하나님께서 구해주시고, … 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당신의 기쁨을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 권면을 하면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우리의 모든 일상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상의 생각과 그 모든 행위와 선택과 다툼과 평화조차도 이 말씀 안에 규정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우선입니다.
우리 삶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 하나님의 영광까지 축복으로 받습니다. 성경의 이 진리가 보이십니까? 하지만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남겨진 축복이 전혀 없습니다.
아담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 그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영적인 진리는 한결같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로 한 번도 이 원칙이 바뀐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위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 너희의 필요보다 먼저 기도해야 된다.” 이렇게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 가지로 말씀하시죠. 첫 번째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 (새번역) 이것은 새번역입니다. 여기 개역개정은 좀 잘못 번역되었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개역개정) 왜냐하면 이게, … 이름을 거룩히 만드는 주체가 누구인지 좀 애매하지 않습니까? 우리말에는 주어가 강조되지 않기에 살짝만 잘못 번역해도 주어가 뭔지 헷갈립니다. 오히려 옛날 번역이 더 낫습니다. 옛날 개역한글 번역이, … 여러분 이것으로 아직까지 외우는 분들 계시죠.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 (개역한글) 이름은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드십시오.” 이것이 원어의 정확한 뜻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단 한 점이라도 영광을 더하거나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거나 그런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월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토록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시다는 것은 우리가 배운 바대로 이 세상의 모든 피조계와 완전히 구별되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있죠.
근데 왜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데 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열정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러한 열망이 너희의 마음에 있어야 되고, 이러한 열망이 너희의 기도로 표현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더럽혀졌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 마음의 소원, 그런 안타까움, … 염려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런 걱정, … 내 걱정 이전에 하나님의 걱정이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 이런 하나님 자녀의 걱정은 우리 늙으신 부모를 생각하는 그 염려하는 걱정보다 더 할까요? 저는 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께서 평생 그렇게 사셨다는 것을, … 계속 인용하는 요한복음 17장, …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보면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제가 일부만 읽어보겠습니다.
“…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 (요 17:1–26)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사신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함께한 그 영광으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지금 빌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는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에 붙들려 사는 삶을 살면 일정 부분, …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것을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이것이 너희의 열정이 되게 하라. 삶의 열망이 되게 하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역사, 초대교회의 역사, 우리 믿음의 선배들, … 그런 것 이전에 성경, 심지어는 구약 성경의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구름떼와도 같은 모범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다윗이 골리앗에게 했던 말과 행동은 하나님 영광을 위한 다윗의 열정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이것이 세상에 대한 악한 세력에 대한 우리 마음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승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시편 34편에 보면, 또 다윗이 기록한 이상한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상한 구절이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기도하고 있던 다윗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저는 이것이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는 우리는, 형제 자매들에게 우리의 친구들에게 다윗처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떳떳하게, …
“나와 함께 주님을 높이자. 모두 함께 그 이름을 기리자.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 주님을 우러러보아라. 네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 (시 34:3–5)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한 점도 보탤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거룩해지는 일을 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혹은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져서 더럽혀지는 것을 염려할 수가 있습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과연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 걱정하며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지 높임을 받을지 염려하고 노심초사하고 걱정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내 이름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이름표를 달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표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이름이 거룩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고 심지어 일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첫 번째 청원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받으면 우리의 많은 기도가 얼마나 무가치한지, … 쓰레기 같은지 금방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입니다.우리가 기도하러 하나님 존전으로 나아갈 때, … 우리의 상황, 우리가 처한 조건, 우리가 겪는 애로, 그밖에 우리를 사로잡는 갖가지 염려와 갖가지 생각들로 우리 마음이 복잡하고 산란합니다. 그때 멈추어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절망에 빠진 내 기도를 들어주세요”라고 하는 당위성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확신을 가졌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렇게 담대하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명예를 위해서 저를 구해 주십시오.” 시편을 보시면 이러한 기도가 얼마나 나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장 거룩한 순간에 있어서도 그 기도의 가장 우리 마음의 상층부를 차지해야 되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열심인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두 번째 청원은 무엇입니까?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 입니다.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 그 나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배운 바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셔서 통치하는 그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를 계속해서 읽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어둠의 권세, 마귀의 왕국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곤란한 점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의 왕국이 이를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철저하게 절망했던 옛 선지자들은 새롭게 도래할 하나님의 왕국, 곧 메시아께서 친히 통치하실 그 나라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서 우리가 아는 바대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옛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사역과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이루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귀가 쫓겨나고 병자가 치유되고 수많은 선택하신 백성이 하나님 나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전망을 가지고 우리 주변과 역사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만 역사 의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역사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래서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떻습니까? 2천년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는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보셔야 합니다. 한 영혼이 예수님의 다스리심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때 하나님 나라는 한 영혼의 마음속에 이루어집니다. 혹은 이런 것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복하게 된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반영하는 정치적인 법안 하나를 상정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남녀에게 주신 순결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 주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완전한 사랑을 즐겁게 노래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이 두 번째 기도는 이른바 선교적인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적인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기도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설파하신 순종케 하는 복음, 그것에 굴복하기를 주께서 선택하신 모든 백성을 친히 다스리는 그 나라가 속히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날이 속히 앞당겨지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벧후 3:10–13)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노력한다고 하나님 나라를 단 한순간이라도 앞당길 수가 있겠습니까?하지만 베드로의 이 말씀은 단 한순간도 우리가 견딜 수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속히 마귀를 저 지옥의 불못에 던져 넣으시고, 이 땅에 온전한 정의와 공의와 자비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답답해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그 날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믿고 기다리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이 기도의 뜻입니다.
마침 지금이 대림절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우리 주님은 어떤 분으로 오셨습니까?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은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긴 해도 그날에 오실 주님은 유다의 사자입니다. 당신께서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입의 말씀은 모든 민족들을 쳐서 복종시키실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존재들만 이 땅에 있을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 주님께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오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날에 어떤 일이 있습니까? 저는 이것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에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적한 대적했던 모든 존재들을 쓸어모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 안에 넣으실 것입니다. (계 19:15-16)
이것은 하나의 비유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존재들을 모두 친히 밟으실 것입니다. 온 세상은 원수들의 피로 가득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는 죄 없는 어린아이의 피로 일부 지역만 물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의 피로 온 세상이 물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그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대신해서 의인들의 원한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이야기이고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히!
이 세상 사람들이 이런 전망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절대로 가질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왜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산타클로스와 같은 예수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시기도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반드시 말씀하신 역사의 진실, 역사의 결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그 열심에 우리도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세 번째 청원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복음에 보면 세 번째 청원이 빠져 있습니다. 누가 복음의 주기도에는요. … (눅 11:2) 이 말씀은 첫 번째 두 번째 청원에 세 번째 청원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자세히 보면 이 세 가지 청원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논리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하나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온전히 거룩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단 하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기도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속마음, 당신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바로 오늘 배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주님은 평생 이런 기도를 해오셨습니다. 평생, … 그리고 이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기도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하셨던 이 기도를 온전히 응답하시는 날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예언을 통해서 이 모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과 천국과 관련된,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사랑을 흐릿하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명백한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명백한 것입니다. 그 날에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높일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와 자비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 땅을 지배할 것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날의 예언자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새 하늘과 새 땅이 새 예루살렘이 이곳에 펼쳐질 것입니다. (사 65:17; 계 21:1)
그날에는 옛 선지자가 노래한 대로 지금은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랑과 진리가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싸워야만 했던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게 됩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의 진리가 돋아나고 하늘에서는 정의가 이 땅을 굽어볼 것입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해서 이 땅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 백성을 위해서 온갖 풍성한 열매들을 풍성히 맺을 것입니다. (시 85:10-12)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소망은 여기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삶의 열정은 여기에 맞추어져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교훈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아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정치적으로는, … 우리 가운데도 틀림없이 진보주의자도 있고 보수주의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진보, 진정한 보수가 원하는 것은 같습니다. 사실은 같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선한 인간들이 원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그 나라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을 향해서 마음의 열정을 품고 달려나갑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샬롬입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서, … 조금 오해가 있을 수 있어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바람과 열망, 우리 마음에 어떤 바람과 소원이 있지 않습니까? 그 모든 우리의 마음의 바람과 열망 가운데 가장 우선되어야 되는 열망은 바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열망은 우리의 단지 우리의 어떤 필요들,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것들을 바라는 그 열망보다 우선해 있다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선이나 금식이나 기도보다도 더 우선한 우리의 마음이 열망입니다. 전도, 선교, 봉사, … 주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명한 모든 선한 것들, 모든 위대한 행위들보다 더 우선한 마음의 열망입니다. 주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가 가져야 될 유일한 열망이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유일한 열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열심을 가지셨습니다. 태초부터, … 우리 주님께서 이러한 열심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러한 열심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뜻, 이것이 모든 하나님 자녀의 유일한 열망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염려하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염려하는 것이, … 그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주기도로 기도하며 일상을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항상 기도하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 마음속에 지녀야 될 질문은 한 가지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나의 선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이 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가?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시는가? 내가 이 선택을 하는 것은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내 자신의 욕망의 실현을 위한 선택인가?”
단 한 가지 질문입니다. 또,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질문할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이렇게 응답되기를 바라는 열망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모든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셔야 된다는 그런 열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만 이런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쩌면 이전에 이러한 기도를 해오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셔서 여러분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지금 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 여러분이 또 한 번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님을 향해서 기도할 그날이 온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때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기도를 응답하셔야 된다고 담대하게 우리 아버지께 외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명예가 지금 땅에 떨어지게 생겼습니다. 저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하나님을 의심하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저를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출해 주시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도록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셨음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기도였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왜 염려하십니까?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흐트러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하되, … 기도하기 전에 우리 마음에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영적인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명백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 이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다. 나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산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기쁨이다. 다른 것들은 다 사소하다. 다른 것들은 다 나를 따라오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유일한 축복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우리가 하나님만 구하면 됩니다. 정말입니다! 나머지 것은 따라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와 우리 마음의 열망을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축복을, … 하나님 자녀에게만 허락하신 놀라운 축복을 반드시 저와 여러분은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에서 구하소서 (마 6:11-15) / 산상수훈 28 (0) | 2024.12.09 |
---|---|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마 6:9b-10) / 산상수훈 27 (0) | 2024.12.02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 6:9a) / 산상수훈 26 (0) | 2024.11.24 |
참된 토대 (롬 3:27-28) / 마틴 로이드 존스 (0) | 2024.11.24 |
종의 영, 양자의 영 (롬 8:15-17) / 마틴 로이드 존스 (0) | 2024.11.13 |
블로그의 정보
하늘씨앗교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